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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관찰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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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bong 2022. 4. 15.

또 다시 찾아왔다. 알 수 없는 우울감. 어제는 유독 심했다. 어쩌다 보니 말하고 싶지 않았던 내 얘기를 하게 됐고 거기에 응해준 친절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오르고 그것들과 같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트라우마들도 딸려나왔다. 집에 가는내내 기분이 가라앉았다. 괜히 내 얘길한것 같아 후회하면서도 누군가가 배푼 친절이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지나간 과거에 힘을 실어주는 대상이 내가 아닌 타인이라서 지금의 나는 그것이 너무 버겁다. 모르겠다. 너무 오래 잊고 지내서 이 기분의 근원이 무엇인지. 아마도 내 의지가 아닌 것들에 대한 우연들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그런 우연들 앞에서 확실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한 두번이 아니라서 역겨웠을거다. 자기비하, 자기혐오에서 오는 우울감과 누군가의 친절에 대한 미안함일 것이다. 마침 우울하기 딱 좋게 날씨도 흐리고 춥기까지 했다. 이대로 집에 가면 땅굴을 있는대로 파대며 정신을 잃을 것만 같다. 좀 전에 읽었던 책에서 몸과 마음에 기운이 필요할 때는 스스로를 잘 먹여야 한다는 구절을 떠올리며 멍하니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 불판에서 갓 나와 아직도 펄펄 끓고 있는 설렁탕을 보니 어떻게 하면 저기에 데이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온 신경을 설렁탕에 집중했다. 용암처럼 뜨거운 국물을 먹어보겠다고 후후 불어대며 밥도 말고 소면도 건져먹고 야무지게 깍두기도 씹어먹었다. 추웠던 몸이 뜨끈해지고 배가 터질 것 같았다. 헉헉거리며 집에 오자마자 잠옷으로 갈아입고 욕실로 들어가 씻었더니 졸음이 쏟아졌다. 오늘도 여전히 이상한 꿈을꿨고 찝찝한 기분으로 일어났지만 해가 쨍쨍하니 날씨가 좋다. 오늘은 금요일이지만 여기저기 걸어다녀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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