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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관찰일지

꿈보다 해몽

by Dabong 2022. 4. 13.

난생 처음 복권을 샀다. 전말은 이랬다.
전날 밤 꿈을 꿨는데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오셨다. 초등학교때 살던 너무나 익숙한 집안 풍경에 외할머니가 계셨다. 복작복작 부엌에서 무언가를 끓이고 계셨는데 다가가서 뭐하시냐 물었더니 배가 고파서 죽을 끓이신댔다. 그런데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볼이 패여있어 내가 알던 볼이 통통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순간 끓이던 냄비가 넘치려고 하자 할머니가 뚜껑을 열어 휘휘젓더니 그릇에 덜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냄비채로 뜨거운 죽을 허겁지겁 드시는거다. 나는 너무 놀라서 안뜨겁냐 재차 물으며 물을 따라 드렸고 그 사이 죽을 순삭하신 할머니가 잘 먹었다며 의자에 앉으셨는데 내가 알던 통통한 볼살의 귀여운 외할머니의 모습으로 돌아와있었다. 그리고 나를 빤히 쳐다 보시더니 갑분 아야 너 결혼해야되겠다 하시는거다. 어른들 만나면 늘 듣는 레퍼토리인데 어릴때 키워주신 외할머니한테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결혼생각이 없다며 다른말로 둘러대려 했더니 누구 집에 누구도 결혼했고 누구는 어떻게 만나서 잘 살더라며 내가 모르는 이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꺼내놓으셨다. 매번 하던대로 말로만 알겠다며 할머니 손을 잡았는데 얼음장처럼 너무 차가운거다. 할머니 추우시냐 추우면 내 방에 전기장판 틀어줄테니 가서 누워계셔라 하는데 안 춥다며 계속 앉아만 계셨다. 할머니 손을 주무르고 싹싹 비벼가며 따듯하게 하려해도 한 겨울에 방치된 쇳덩이처럼 사람 손이라고 할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나는 할머니 손을 붙잡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말을 걸었는데 대답없이 나를 빤히 쳐다만 보셨다. 그렇게 꿈에서 깼고 기분이 너무나 이상했다.

기분이 이상했지만 왠지 안 좋은 꿈은 아닌것 같았다. 복권을 사야하는건가?? 로또는 너무 복잡하고 결과를 토요일까지 기다려야하니 출근길에 즉석복권을 사야겠다 생각했다. 마침 가는길에 복권판매 편의점이 있었는데 1등이 나온 소위말하는 명당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000원 2장 1000원 2장만 사기로 했는데 복권은 현금판매인걸 이제 알았네?? 현금 탈탈털면 1000원 한장은 살수 있었는데 한번에 다 사고 싶은 마음에 그냥 나와버렸다. 점심때 이 찝찝한 기분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 근처 다른 편의점에 들러 이번엔 제대로 현금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번엔 편의점에서 복권이 1000짜리밖에 없다는거다. 뭐지.. 아침에 들른 그 편의점에서 사라는 계시인가... 그래도 일단은 천원짜리라도 긁어보려 3천원치를 샀다. 결과는 다 꽝. 집에 가는길에는 2천원 복권을 사겠다 다짐하고 아침에 실패한 편의점에 다시 찾아가 2천원 1장 천원 1장을 더 샀다. 결과는 4000원 당첨. 6천원내고 4천원 벌었넴? 아침에 현금이 있었다면... 그래서 그때 긁은 복권이 좀 더 큰 액수로 당첨됐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망상회로가 굴러갔다.

당첨금액을 받고 집에 오는길에 이렇게 복권에 빠지게 되는건가? 이렇게 다들 잔돈을 모아서 복권을 사는건가? 한참을 생각하다 집에 왔다. 복권당첨자들의 기사나 인터뷰를 보면 좋은 꿈을 꿔서 샀는데 당첨됐다 그런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특별한 꿈을 꾼것도 없고 그저 매주마다 잔돈모아 한 두장 사던사람들, 재미로 한번 해본사람들, 별 기대없이 긁었는데 됐다는게 대부분. 그리고 조상님 나올때마다 매번 사는데 된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한번에 몇 십만원치를 사도 안된 사람도 있었다. 그래... 복권은 확율이고 복불복이지. 그래도 처음 해봤는데 4천원이면 선방한거 아닌가?? (네? 뭐라구요??) 그렇게 세뇌시키며 또 사고 싶은 마음을 추스렸다. 그러면서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가슴 속에 3천원정도는 품고 살기로 마음 먹었다. 가상자산시장이 활발히 이루어 지는 사회에서 현금의 소중함을 알게 된 하루였다. (이렇게 정신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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