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혈액부족 기사를 봤다. 혈액을 저장해두는 창고가 텅텅비어 있고 그나마 남아있는 혈액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몇개 남아 있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더 혈액수급이 어려워졌고 어떤곳은 보유량이 3일치도 안된다고 한다. 헙... 저 정도면 너무 심각한거 아님?? 우스개 소리로 피뽑고 문화생활한다며 다들 헌혈해본 경험이 있을텐데 나는 고등학생때 학교에 헌혈차가 와서 차안에서 헌혈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이후로 해본적은 없다. 쫄보라서 바늘도 무섭고 내 피 보는것도 무섭고 더 무서운건 나는 혈관이 잘 잡히지 않아서 간호사들이 애먹는 팔뚝을 가졌다.
잘 안잡히는 혈관으로 생긴 기억의 조각들이 몇몇있는데 초등학생때 주사바늘을 손목에 맞은 적이 있다. 팔뚝을 오른쪽 왼쪽 이리저리 고무밴드를 묶었다 풀었다 반복하시는데 어린 내 눈에도 간호사님이 여간 당황해하는게 느껴졌다. 손목에 주사를 맞고 나선 호들갑스런 아이들이 쟤는 손목에 맞았다고 광고를 해대고 구경하러 오는 애들까지 있어서 정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른 기억은 몸이 안좋아서 병원에서 수액을 맞았을 때였는데 간호사가 역시 당황해하며 부산스런 행동을 취하셨다. 신입 간호사였는지 나름 해보려고 고군분투 했는데 너무나 끔찍했던건 찔러놓곤 여기가 아니였는지 다시 빼는 것이다. 손에 땀이 흥건해지고 부들부들 떨자 간호사가 너무 미안해하시면서 수간호사를 불렀는데 수간호사도 한차례 고무밴드를 번갈아 묶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오... 주여... 결국 손등에 바늘을 꽂고 수액을 맞게 되는 트라우마가 하나 추가 됐다.
나는 그렇게 바늘 공포증이 생겼고 헌혈은 꿈도 못꿨는데 고등학생때는 헌혈하면 한 교시는 쉴 수있어서 쉴려고 피뽑았넴ㅋㅋ 바늘공포를 이겨버리는 고딩의 쉬는시간. 무튼 살면서 팔에 바늘 꽂을 일이 얼마 되지않는데 자발적으로 찔리러 간다니 나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뉴스 기사를 보고는 마음이 좋지 않아 언젠가는 헌혈하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을 했을뿐 언제 가겠다고 정하지 않는것이 흠이지만...
여름이 다가오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는 내향인에게 4월을 버티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 변해야 할것 같은 강박증이 있는데 이럴땐 새로운 경험을 함으로써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진~짜 큰 맘먹고 헌혈했다!! 퇴근길에 든든하게 밥을 챙겨먹고 결의를 다지며 마음만큼은 떼인 돈 받으러 처들어 온 당당한 조폭에 빙의하여 문을 열었지만 문진표 작성하면서 점점 콩벌레가 되어갔다. 헌혈 전에 몸상태 검진겸 개인정보 확인하는데 나보고 헌혈 처음이시네요 하는것임... 네? 저 고등학생때 차에서 헌혈 했는데요?? 정보도 기록도 없으니 지금하는 헌혈이 처음인거라며 고등학생때 컨디션이 안 좋아서 못했나보네 하면서 내 기억을 조작하는게 아님?? 아닌데..그래 뭐.. 기록이고 나발이고 내가 헌혈했다면 한거지 뭐... 아니 그럼 그때 차에서 뽑은 내피는 어디간 것이여?? 넘나 황당...
검진 후 헌혈 가능한 상태를 확인받고 바로 피 뽑으러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아... 또 시작된 나의 트라우마.. 이겨내야쥐... 나는 어른이니까ㅠㅠ 팔에 옷을 걷어붙이는 순간 내 안에 쫄보 자아가 간호사님에게 구구절절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요.. 제가요.. 혈관이 잘 안잡히는 팔뚝인데요.. 그래서 조금 당황하실 수도 있는데요.. 예 그렇다구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프로 간호사님은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왼팔을 눌러보시더니 역시나 반대 팔에 밴드를 묶으셨다. 등골이 오싹하고 발바닥까지 땀이 났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날 정도로 있는 힘껏 주먹질을 해댔는데 오른쪽 팔에 한곳이 잡히니 여기에 하면 되겠다고 하셨다. 와우... 그래도 2차 시도만에 성공했네 그려!!
헌혈 바늘이라 좀 굵어서 그런지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피를 펌프질 할때마다 엄청 따끔거렸다. 헌혈 중에 기념품 고르는데 당연히 문상이지요!! 혈액부족이라서 그런건지 1+1이벤트로 5천원 2장 준다. 피 뽑고 만원 벌었넴! 나도 이제 피뽑고 웹툰보는 1인.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피뽑고 지혈하기까지 10분정도? 기념품이랑 간식 받고나면 빈혈이나 부작용 방지를 위해서 대기 쇼파에서 10분정도 앉아있다가 가면 되는데 나는 헌혈 처음이라고 사은품 하나 챙겨 주셨다.
앉아있는 동안 뭔가 싶어서 열어봤는데 큐브... 아... 이 플라스틱 쓰레기... 처음이라고 챙겨줬는데 안 받을 수도 없고... 나는 조카도 없는데 이걸 어따 써... 차라리 처음 헌혈하는 사람에겐 간식을 하나 더 챙겨주세요. 빠다코코넛은 죄가 없지만 저는 초코쿠키 좋아합미다. 오레오도 대환영!
아무튼 헌혈증서와 함께 문자 메세지도 받았는데 헌혈한 날 기준 8주뒤에 다시 헌혈 할 수 있다고 한다. 근데 다음 헌혈이 자동 예약이 되어벌임. 물어보니 전산상으로 그렇게 시스템화 된거고 예약했다고 꼭 헌혈해야 되는건 아니라고 한다. 그때도 큰 맘 먹고 할 수 있으면 해봐야겠다. 왠지 바늘공포증 극복기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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