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이후로 노예오디션 공고만 들락날락 거리다 혼자서 끄적대며 그림을 그렸고 막막할땐 유투브 그림영상을 보다가 잠시 도피하는 등 도루마무 도루마무 하는 사이 3월이 지나갔다. 누가 보면 하루죙일 골방에 처박혀 그림만 그린줄 알겠넴... 절반이상은 그린다고 앉아서 1. 아... 그려야되는데... 2. 잠깐 요것만 하다 해야지... 3. 뭐 그릴지 자료만 주구장창 보기를 섞어가며 이렇다 할 만한 그림이 없이 그렇게 한달이 흐른 것이다. 그럴때마다 '개인작을 하기엔 내가 아직 짬이 안되는가보다. 내가 좆밥인데 무슨 창작을 해... 기깡취파(기본기 깡패가 되어 취향을 들고 파기)에 기깡만이라도 되어보자' 며, 그래도 2달 수업듣고 배운 것들을 복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귀신같은 타이밍에 다른 아카데미에서 연락이 왔다. 무려 작년 8월에 걸어놨던 대기가 지금에야 풀린 것이다. 아... 이를 어쩐다... 나는 한것도 없고 머니도니가 저만치서 나를 예의주시하고 있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기회는 지금뿐이고...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이미 온라인 수업에 선입견이 생겨버린 탓에 이 기회가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알수 없는 가운데, 그럼에도 그 동안 혼자 그린 그림에 피드백이 필요했기에 '한달만 들어보지 뭐... 일단 학원도 다르고 선생도 다르니 전과는 모르긴 몰라도 다르긴 다를것' 이라며 수강 신청을 해버렸다. 이 모든게 4월의 첫째주 5일 안에 벌어졌다.
수강신청은 전에 학원과 다를 것이 없었고. 이번엔 확실히 자기 어필을 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얻어 학원비가 아깝지 않기를 원했기에 솔직하게 설문에 답했다. 완전 기초 초보 비기너는 아니오니 기본기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 정도는 못하지 않으니 제발 나한테 채색이랑 그림 완성과정을 가르쳐줘 그것만을 !!!원해!!! 내가 바라는 추구미도 이런것이야. 그리고 비록 개인작은 없지만 난 이 만큼은 그린다우? 자 봐! 내가 그린 것들을~!!!!촤라락!!!
나는 내심 나쁘지 않게 그리네요 내지는 잘 하시니까 이렇게 더 해봐요 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업에서 내 차례가 왔을때 강사가 처음 한 말이 묘하게 기분나쁘고 불쾌한 기시감마저 들어 강사의 말을 수긍하고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특별히 수업이 이상하지도, 강사가 별로이지도 않았으나 수업이후 자매님에게 강사 흉을 좀 봤더랬다.
"강사가 너무 정없고 약간 mz서울깍쟁이 같아서 나랑 안맞을 거 같은데 뭐... 수업은 꼼꼼하게 하는거 같아~ 그래도 내가 원하는 거 위주로 진행해준다니 돈이 아깝진 않을 거 같네~ 아니 근데 썩 그렇게 실력이 대~단히 좋은 거 같진 않고 오히려 전에 강사가 더 잘 그리는거 같은데 그래도 나는 채색하고 완성하길 바라니까 그거만 생각하면 이 강사가 나쁘진 않지~ 근데 말하는게 묘~하게 재수가 없단 말이야... 수업진행방식은 나쁘진 않은데 사람이 별로야.. 근데 또 뭐... 강사마다 장단점이 있는거니까 아주 장점만 있을 순 없잖아? 내가 이해해야지 뭐~"
(쓰고보니 님(나) 뭐하냐... 아... 내 밑바닥에선 썩은 냄새가 나....)
저런 말을 내뱉고 나서도 이상하게 분이 풀리지 않았다. 목석같은 언니를 앞에 두고 이유모를 돌림 분풀이 노래를 2절 3절 부르다 보니 제법 명쾌한 답을 스스로 알아내게 되었고 그제서야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모든 것들에 대한 무서움과 불안함이 몰려왔다.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 나온 구절을 읊을 시점이다.
루씨는 여전히 겁이 나. 그러나 겁이 난다는 사실은 하나도 겁 안 나.
루씨는 지금 아주 용감하게 겁이 나.

바야흐로 강사가 처음 내게 한말은 나에게 비수가 되어 아니 마치 미리 장전이라도 해놓은 거 마냥 총알이 되어 내 심장을 쏴댔다.
개인작이 없는걸 본 강사는 대뜸 개인작이 왜 없냐 물었고(황당하다는 듯.. 하지만 나는 그렇게 들렸는 걸...)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닌거 같아서 기본기 위주로 공부하느라 못하고 있다고 하자...
" 개인작을 할 정도라는 라는 건 없어요. 그냥 안하는 거죠. 개인작을 해봐야 내가 뭐가 부족한지가 바로 보이고 거기에 맞춰서 공부도 하는건데 기본기랑은 상관없어요. 기본기는 답이 있지만 개인작은 답이 없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답을 찾아가야 되는 거에요. 프로세스나 채색 과정도 이렇게 해야돼 라는 정해진 답이 없어요. 채색도 지금 모작한거 보면 충분히 할수 있는데 개인작을 안하신거에요. 입시미술 3년하셨다고 하는데 입시미술은 답이 정해져있는 거라 아직도 거기에 길들어져 있으면 안돼요. 스스로 못한다고 생각하고 안하면 계속 안하게 되니 그냥 해보는 수밖에 없어요. 아마 본인이 엄청 대단한 걸작을 만들어야 된다는 부담이 있으니까 못한다고 생각하는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개인작을 했을때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이 나올까봐 외면해버리는 거 같은데요? 그리고 기본기도 인체를 보면 많이 안 그려봐서 그런거 같아요."
(ㅅㅂ... 존나 명사수 스나이퍼 납셨네... 새삼 다시 적고 보니 팩력배가 따로 없다. 순살되다 못해 응급실 실려가겠네... )
수업동안에는 아네.. 그러네요.. 네 맞아요 하고 넘겼지만 속으론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에 순간 멘붕이 왔다.
그러면서도 그 동안 혼자 끄적였던 스케치를 피드백 해줄때 ' 내가 많이 안그려봐서 그렇다고? 내가 보내준 그림 다 본거 맞아? 얼마나 피드백 잘하는지 어디 한번 보자. 내가 그린 거에서 큰 변화도 없구만?? 전에 강사에 비하면 그렇게 인체에 대해 잘 알지도, 그리지도 않는 거 같은데 이 사람한테는 채색만 배워가야지'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수업이 수강생이 원하는 것 위주로 진행되는 방식이라 우선은 개인작을 해보고 그림 하나를 완성해보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들었던 감정은 부끄러움, 수치심, 억울함, 분노, 띠꺼움, 아니꼬움, 자기혐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는 열의, 자기 반성 등등 이었던거 같다. 나열한 이 모든 감정들을 수업이 끝난 뒤 하나하나 꺼내어 놓고는 이 새벽에 깨달은 건 아...나도 어쩔수 없는 조~온나 개밥 쉰내 나는 개꼰대 좆밥이잖아!! 그래... 나는 좆밥이기까지 하면서 썩은내 나는 개꼰대 였숴!! 촤하!!. 하... 인간은 왜 이다지도 나약하고 치졸한가.. 난 생각보다 항마력이 없나봐..

무언가를 배울때 가르치는 입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뭘 알고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잘 배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나 역시 존심 쎈 배운 사람이었나 보다... 제발 자존심이 밥먹여주니?? 자의식과잉따위 찢어 발겨 없애버리고 자(기)객(관화)이 되어 건강한 삶 되찾자!!!

믿어요!! 메타인지 세계관!! 빠른 인정, 선택과 집중. 오늘만 비장해지고 눈감고 일어났을 땐 새로 태어난 좆밥이 되자.
좆밥. 그거슨 아무코토 아닌 것. 그거시 조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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